[고영주 박사의 과학이야기] 인간의 생명을 구한 과학기술과 영웅적 과학자

고영주 박사 승인 2024.04.05 13:51 의견 0

인류 문명은 생존과 건강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다. 인류의 생존과 생명을 위협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평균수명 80대의 시대를 살고 있고 인류 문명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1900년 즈음 전 세계 과학자들의 가장 큰 화두이자 이슈는 증가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었다. 당시 전 세계 인구는 15억 명을 넘어서고 있었으며, 식량 생산 능력을 고려했을 때 20억 명을 넘어서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 결론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한 것은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농축, 고온·고압과 촉매로 수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제조했다. 여기에 질산·황산과 혼합해 비료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당시 중소화학기업이었던 독일 바스프의 엔지니어 카를 보슈는 하버의 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공정과 촉매 기술을 개발했다. 전쟁에 협조하여 전범이 되었던 하버와 보슈는 인류를 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18과 1931년에 각각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는 혈액형의 과학을 모를 때 많은 사람이 수술하거나 출산 도중 수혈을 제대로 못 받아 사망했다. 오스트리아 생리화학자, 카를 란트 슈나이더는 1900년 32세의 나이에 시험관 속에 피를 섞는 실험을 하다가 지금의 ABO와 Rh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노벨생리의학상 수상과 10억 이상의 인류 생명을 구했다. 지금 세계 헌혈의 날인 6월 14일은 그의 생일이다. 과학자가 생명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순간이다.

인류에게 당뇨병은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었고 소아 당뇨병 사망도 수천만 명에 이르렀다. 캐나다의 의사였던 프레드릭 밴팅은 친구가 당뇨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집요한 실험 끝에 소와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13세의 당뇨병 환자에 투여해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캐나다 정부는 밴팅의 공적을 기려 밴팅연구소를 세워 소장으로 임명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영국왕 조지 5세는 기사 직위를 수여했다. 그는 당뇨병 환자와 캐나다 국민의 영웅이었다.

2009년 8월 15일 이후 신종인플루엔자가 확산했고 5개월간 70만 명이 넘는 환자와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공포가 확산했으나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의약품 타미플루가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며 더 이상 격리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게 됐다. 사실 타미플루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의약품이나 이를 개발한 과학자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사의 한국인 과학자 김정은 박사였다. 로슈는 이 약 하나로 2009년 1조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약사 성장과 신종플루 공포의 탈출을 도운 숨은 영웅이 있다는 사실은 의약품 연구와 개발의 파이프라인 어딘가에 영웅이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를 살상하며 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연두는 전파가 쉽고 치사율은 30%에 이르렀다.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과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인류 최초의 백신을 만들었고 오랜 기간의 백신 접종 포위 전략으로 천연두는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석영이 종두법을 보급하며 천연두 예방과 치료의 기반을 닦았다. 어떤 과학자는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고 어떤 과학자는 이를 다양하게 적용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영웅들을 통해 인류의 생명은 연장된다.

얼마 전 코로나19가 전 세계 인류 문명을 멈춰 세웠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나기도 전에 화이자와 모더나가 신속하게 mRNA 백신을 출시할 수 있도록 mRNA 백신의 기초 원천 기술을 개발한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부사장, 드루 와이즈만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2명의 생화학자가 있었다. 이들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긴 mRNA를 지질 입자에 넣어 인체 세포에 들어가게 만들고,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이를 인지해 항체를 생성하게 하는 mRNA 백신의 기초 기술을 개발했다. 인류 문명을 다시 달리게 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공로로 그들은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분야 거부들이 2012년 만들어 거금의 상금을 함께 주어 ‘실리콘밸리 노벨상’, ‘과학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생명과학상을 받았다.

이제 인류는 기후변화와 미세플라스틱 공포,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위기의식에 빠져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듄’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여러 행성에 살게 된 인류, 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의 통제에 맞서 아예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없는 10,191년의 머나먼 미래를 그리고 있다. 기후 변화와인공 지능의 위험을 멋지게 극복하고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꾸는 과학기술과 과학 영웅은 어디에 있을까? 환경 파괴의 산업화 경로를 바꾸고 건강, 사람, 안전, 환경 중심의 새로운 인류 문명으로 진화하려는 인류의 공감대가 과학 영웅의 탄생을 촉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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