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칼럼] 109년을 맞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유성호텔, 근대문화 자산 왜 지우기만 하는가?

작별! 109년 유성호텔

강대훈 대표 승인 2024.04.05 16:12 의견 0

지난주 목요일 오후, 나는 조용한 고별식을 했다. 유성호텔을 찾아 대욕장에서 샤워를 하고, 야외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가, 사우나를 했고, 열탕과 냉탕을 오고 가면서 목욕을 마쳤다. 호텔을 나와 맥주를 마셨다. 그날따라 기포를 따라 올라오는 황금빛 맥주 맛은 씁쓸했다. 1915년 개관을 하여 2024년에 109년을 맞이하는 유성호텔이 올해 3월 31일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이후의 이 호텔은 헐고, 개발사는 해당 용지에 24층짜리 호텔 1동과 주상복합 건물 2동을 올릴 전망이다.

유성 호텔 건축 양식, 바우하우스 시대의 미니멀리즘

유성 호텔의 건축 양식은 바우하우스 시대의 미니멀리즘을 상징한다. 번잡스러운 장식 없이 실용적인 단순함으로써 기능에 충실한 그 시대의 대표 양식이었다. 멀리서 보면 디터람스의 빈티지 오디오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양이 나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60년을 가까이한 유성호텔과 나의 기억, 이 기억과 연쇄한 사람들의 추억, 이런 것들이 모여서 생기는 대중의 의식성 같은 것의 마인드 마크를 허문 다고 하니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50년 전부터 엄마, 아버지 손잡고 와서 50년 이상 목욕 다닌 곳인데……. 주상복합을 올리더라도 유성구 의회에서는 109년 유성문화의 상징이었던 유성호텔의 일부를 남기는 표식을 결의한다면 좋겠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본관 일부를 남긴 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서울역이 그렇고, 서울시청 또한 근대 건축은 남기고 후면을 개발했다.

서울시청은 전면의 근대 건축물은 남기고, 후면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확장했다. 만약 전면부의 건물을 철거했다면 근대 서울시의 장소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지: printerest)

유성호텔과 역대 대통령들 그리고 ’93 대전엑스포

유성온천은 1970년 전후로 온양온천, 수안보온천과 함께 국내 온천 관광지로 곽광을 받았다. 낭만의 신혼여행 명소로도 명성을 떨치기도 했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녀갔다. 김종필 전 총리도 자주 찾아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내 결혼도 유성호텔에서 했다. 오랫동안 활동했던 JC 행사도 유성호텔에서 많이 했다. 이 호텔은 190개의 객실과 대연회장, 수영장 등까지 갖추고 있어, 88서울 올림픽 때는 대전 선수촌으로, 93년 대전 엑스포에도 관계자 시설로 큰 역할을 했다. 이 효과로 1994년에는 유성 봉명동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유성 온천 지구의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유성온천 특구에 위기가 찾아왔다. 온천 이용객이 줄어들더니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내방객 감소의 근본적인 이유는 코로나가 아니었다. 유성호텔도 100년 동안 경영을 재미를 누리다가, 몇 년 동안 누적된 적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것은 온천 지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형이 없어지면 기억이 소실된다. 사람의 기억은 장소에서 복원되기 때문에, 집단의 기억이 유전되지 않는 곳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다. 온천지역이라는 장소성이 사라진 것이다.

근대 투어리즘의 탄생, 유성온천과 대전 (이미지: 대전시)

​온천 지구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단을 조성한 것

이렇게 개발하는 것은 온천 휴양지가 아닌 공단을 조성한 것이다.

위 사진은 1980년대 유성 온천 지역의 장소성을 파괴하는 무식한 개발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구릉을 골라 평평하게 만들고, 오솔길을 지워 간선도로를 놓고, 호수는 메우고, 두루미가 날아와서 다친 다리를 고쳤다는 온천 생태 지역을 공단 조성하듯 구획으로 나누고 있다. 관광지구라면 들어가야 하는 휴먼 스케일과 생태에 관한 개념조차 없이 콘크리트 건물을 채워 놓고 있다. (이미지: 계룡스파텔)

개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개발할 곳과 개발을 억제할 곳의 구분

​유성 온천 지구를 망친 것은 용적률과 고도제한을 풀어준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도시 경관은 공공재이다. 4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유성자이의 건축 허가 이후 온천 지구의 마천루 건설은 봇물이 터졌다. 유성 최초로 용적률 980%를 돌파한 이 수직 건물 이전에는, 유성호텔 노천탕에서 몸을 담그고 머리를 들어 보면 멀리 계룡산 쪽 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전체 경관을 잡아먹는 매머드 아파트 때문에 보이는 것은 그 건물 벽이다. 그동안 유성온천지구는 용적률 200% 선에서 온천 지대의 풍광을 품고 있었다. 50여 년 전 선화동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도 외할머니, 고모, 이모 친인척이 대전에 오시면 유성 만년장에 목욕을 왔기 때문에 그 당시 풍광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개별과 개인들의 추억을 확인할 수 있는 집단의 기억, 기억을 회복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백제시대부터 내려왔던 온천의 내용성은 개념 없는 개발로 사라졌다.

​고층화 난개발로 온천지구 고유의 지형을 무너뜨린 지금, 군이 점유한 스파텔 부지는 그나마 유성 도심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육군이 그나마 휴양 호텔로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파트를 짓거나 놀이시설을 만들어 도심의 숨통을 막았을 것이다.

유성 온천 지구의 허파로 남아있는 스파텔. 선거 때마다 육군이 복지 시설로 운영하고 있는 계룡스파텔 호텔 부지를 매입하고 온천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들이 춤을 춘다. 그러나 빡빡한 온천 지구에 숨 쉴 공간은 있어야 한다.

온천 도시 영국 배스(Bath)에서 보는 휴양지 개발법

​배스는 잉글랜드 서머싯 카운티 북동부에 있다. 고대 로마 군단은 행군의 피로를 온천욕으로 풀었다. 2000년 전 브리타니아를 행군한 로마 군단이 온천을 발견했고, 뜨거운 물이 쏟는 곳을 도시로 개발하고 배스라고 불렀다. 배스(Bath)는 목욕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배스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인구 8만 5천 명의 소도시이다. 고대 유적을 물론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4000여 개 건물 대부분이 베이지 톤으로 도시 전체가 우아한 갤러리이다. 이 배스를 보면 대규모 쇼핑 타운이 없고 하늘을 찌르는 주상복합 건물이 없다. 그 정도 편의시설이 없어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당당히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인은 전통적인 것은 지형도, 거리도, 도로도, 건물도 보전한다. 당연히 로마 시대의 온천이 남아있어 온천의 역사를 증명한다.

배스 시가지. 고대 도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배스 (이미지: incountryvalueoman.net)

유성, 온천 도시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유성구가 온천지구로 재생하려면 지역의 장소에 담겨있는 고유성과 정체성(Regional Identity)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 한다.

2023년 유성구(구청장 정용래)는 유성 온천문화체험관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이 체험관은 ‘유성온천지구 관광 거점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총사업비 198억 5000만 원이 투입돼 봉명동 574-5 부지에 연면적 4580.73㎡,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건립하는 것이다. 지하에는 주차장, 지상에는 다목적 전시공연장, 여행안내소와 웰니스테라피 및 온천수 체험공간도 있어 유성온천지구의 재도약을 희망하고 있다.

유성온천문화체험관 예상 모습 (이미지: 유성구청)

위와 같은 시설의 본격 시행 이전에 온천 지구의 개념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그 개념은 유성의 역사 전통성, 장소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개념은 전략의 상위개념이다. 온천 지구의 건축 역시 그 개념에 수렴해야 한다. 그 개념 도달하는 주요한 색채. 디자인, 공간구조 등……. 그것들이 영국의 온천도시 베스가 잘 보여주고 있다. 베스는 거리, 골목을 걸어보면 고대 배스의 역사와 장소성으로 수렴되는 맥락을 느낀다.

이홍준 전 대전관광공사 단장은 자신의 블로그 문시사(civinker)에서 유성 온천지구 개발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사업비 260억 원 중에 온천문화체험관 사업비 예산이 200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 60억 원은 용역비, 홍보비, 콘텐츠 개발비 등이다. 따라서, 사실상 이번 온천지구 관광 거점 조성 사업은 건물 하나 짓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체험관이나 홍보관 등을 지어서 관광 활성화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건물 하나 유지하는 데 각종 관리 인건비, 유지 보수비 등 비용만 매년 상당히 소요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떨어져 나중에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외면 받고 업그레이드하면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되는 등 부담만 커진다는 것이다. ​시설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면, 건물보다는 야외 체험시설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족욕장을 확장하여 온천 물길을 만들어 걷는 길로 만들 수도 있다. 사시사철 언제나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따뜻하고 건강에 좋은 온천 물길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사업비로 가능하다면, 세계적인 온천시설인 터키의 ‘파묵칼레’나 아이슬란드의 ‘블루 라군’을 흉내 내어 맛만 보게끔 조그맣게 만들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체험도 체험이지만, 요즘 관광에서 중요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각광을 받을 수도 있다.

- 이홍준 전 대전관광공사 단장

다시 온천 도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베스로 돌아가자. 소설 ‘오만과 편견’을 쓴 18세기 작가 제인 오스틴이 이 배스에 거주했었다. 그래서 매년 9월 하순에는 제인 오스틴 축재가 열린다. 공연, 콘서트, 댄스파티 같은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베스는 역사 공간과 건축과 유물을 보존했기 때문에 소설 속 베넷 부부와 다섯 자매가 살던 집과 그들이 입었던 복장까지 어렵지 않게 복원할 수 있다. 배스의 골목을 걸으면 조 라이트가 감독한 영화 오만과 편견에 둘째 딸로 출연한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주칠 것 같다. 행인은 골목길을 통해 그대로 역사 속,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역사 문화지구, 휴양 지구에서 불가피한 개발은 라데팡스처럼 도심 밖에서 해야 한다.

유성의 도심 속의 온천 지구, 근대 온천을 재생하면서도 개발할 수 있는 방식을 궁리해야 한다. 유성구 의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유성의 근대유산과 엑스포 유산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씩 개발에 밀려 기억의 유산은 사라질 것이다. 원하지 않는 작별은 싫다. 눈앞에서 친구가 멀어지는 것처럼 서운함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대전을 찾은 분들에게 온천 휴양의 즐거움, 대전 시민에게 호텔 문화를 알려준 유성호텔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