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Soul Food)가 있다!

송은숙 승인 2020.07.10 14:12 의견 0

밤 10시가 넘어선 토요일 밤, 가족 단톡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순간적으로 손을 뻗쳐 보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입사 2년차인 둘째딸이다.

 

“엄마. 엄마---- 잡채도 먹구 싶구 갈비도 먹구 싶구 녹두 빈대떡도 먹고 싶어용 ㅠㅠ”

“무슨 일이 있는가?”

“아니 그냥 지금 엄청 먹구 싶어서. ㅎㅎ”

“솔직히 말해 보송”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차주 월요일 1시부터 중역들 앞에서 업무에 관한 결과 발표 및 제안을 하기로 되어 있어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데 발표하는 장면을 생각하다보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소연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이야기 해주고 연습 방법들을 나누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웃는다. 딸에겐 위로의 음식이었나보다. 차주 주말 내려올 때 맛나게 해준다는 말에 엄청 좋다고 박수까지 친다. 여러 가지 음식은 힘겨우니 갈비찜만 부탁드린다면서…….

갑자기 ‘소울 푸드’란 단어가 떠오른다. 소울 푸드의 근원은 아프리카 요리, 그 중에서도 서아프리카의 식문화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취식하던 작물들이 15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과 함께 미국 대륙으로 전파되었고, 이런 취식 작물들을 이용한 요리들이 흑인 노예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였다 한다. 이들의 음식이 20세기 중반 즈음 요리책이 출판되면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고 하는데, 서서히 노예제도 시대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나 삶의 애환이 담긴 음식’, ‘영혼이 담긴 음식’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울’이란 단어의 뜻 때문인지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이며 어릴 때의 추억이나 삶의 애환 등을 훑는 음식’을 뜻하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단어 ‘소울 푸드’. 위안 음식이라고 순화해 말하기도 한다.

4년 전 늦은 봄날 천국에 가신 엄마가 보고프면 필자는 “다슬기 아욱국”을 찾는다. 충북 옥천 금강지류가 지나는 곳이 고향인 관계로 들녘에서 일하시던 엄마를 따라 해가 질 무렵 더위를 씻어내고자 자주 들렀던 금강. 얕은 수면 속에 흙먼지를 씻어내고 물속에 앉아서 돌들을 들추면 한 움큼씩 잡히던 다슬기들을 누런 양은 술 주전자에 가득 담아 손잡고 돌아오던 중 길가의 아카시아 가지도 낫자루로 당겨 잘라오시던 어머니. 대문 앞에 있던 작은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란 아욱과 파들을 한 움큼 뽑아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풍족함과 편안함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영상이 기억에 들어온다.

꺾어온 아카시아 가지에서 가시들을 정리하면서도 다슬기 까먹을 생각에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엄마의 음식 다슬기 아욱국은 내겐 위로의 음식이자 힘내라 응원 해주는 응원의 음식이었다. 지금도 엄마가 생각날 때면 옥천장에 들러 뜨끈한 다슬기 아욱국을 먹고 나온다. 그럼 세상을 마주하는 힘도 배가된다.

생존에는 육체적 배고품과 감정적 배고품이 존재한다. 육체적 배고픔의 경우 어떠한 음식을 먹어도 신체적 만족감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기분이나 감정의 변화로 인해 갑자기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실제로 무엇인가를 섭취하기 직전까지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음식은 감정적 배고픔이 보내는 신호다. 대리만족을 하거나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는 먹방 컨텐츠들을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최근 음식을 먹고 즐기면서 기분을 전환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 테라피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하며 이른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위안 음식이라 칭한다. 실제로 모 대학 교수팀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울할 때는 초콜릿이나 매운 음식을, 즐거울 때는 고기류를 찾는다는 답변이 많았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생각하는 음식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고기, 매운 음식, 초콜릿이 기분을 달래주는 대표적인 위안음식으로 꼽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에서 위안을 찾는다. 이는 자신이 직면할 부담이나 압박을 극복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육체적인 배고픔에 의한 것이 아닌 자신의 기분 전환을 위한 목적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것. 스트레스 해소나 감정적인 욕구 충족뿐 아니라 지루함이나 외로움, 슬픔 등 부정적 감정에 대처하는 일종의 매커니즘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에겐 소울 푸드는 아득한 고향에 계신 엄마의 음식이다 음식은 어머니의 손길이고 어머니의 위안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참 위안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음식은 사랑 그 자체이다. 음식은 생명이고 삶의 재충전하는 에너지이다. 음식은 죽은 생명체로 만들지만 사랑의 씨앗이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싹이 트고 줄기가 생기고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삶에 있어 원천이 되는 씨앗의 음식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어 주고 싶은 바로 그 음식! 자신의 소울 푸드나 상대방의 소울 푸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인생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신비 하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누구에나 소울 푸드(Soul Food)는 다 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갈비찜을 먹어줄 딸아이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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