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거트에 녹아든 思父曲(사부곡) - 강봉성, 강근숙 부녀 이야기

김경희 작가 승인 2020.07.10 14:18 의견 0

문화동 서문로 74-24

그 집 서재에는 특별한 책이 꽂혔다. 따님은 아버지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버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고 아버지가 살던 80년 된 집을 다시 탄생시켰다. 그리고 3층을 오르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놓았다. 온가족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배인 작은 터, 아버지의 자리. 가족의 흔적이 소리 없이 묻히는 것은 안타깝다. 아버지의 자리를 기억하려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를 만들었다. ‘요거프레소 문화점’이 만들어진 사연이다.

 


어르신과 따님이 머물던, 삶이 배어 있는 곳,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추억은 고스란히 남았다. 아버지의 자서전에 그리고 그 터와 그 가족에게, 아흔이 넘은 아버님, 60을 바라보는 따님이 전하는 인정의 향기가 곳곳에 배었다.

아흔이 넘는 아버님은 거제에 계신 95세 누님을 돌봐주시러 자주 거제 행 고속버스에 오른다. 당신 혼자 몸도 건사하기 힘든 연세에 자전거를 타고, 95세 누님을 돌보는 어르신의 가족 사랑과 정신력, 그리고 어르신 만의 건강 비법은 젊은 세대들에게 경종과 같다.

 


아버님의 그 인생을 놓치지 않는 따님의 사부곡도 애틋하다. 부모의 자리를 기억하고 유산으로 남기려는 마음에 숙연해졌다. 달달한 요거트에 사부곡이 녹아 있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분주한 곳이라 따님 마음이 더 속 깊은 울림이 되어 올라온다.

 


서재에 꽂힌 아버님의 자서전, ‘무명인의 발자취’

우리 부모님들은 역사를 만들며 살아왔지만 그 삶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하물며 자식 된 우리도 그러했다.

따님이 아버님의 인생 90년을 기록으로 남겼고 아버님 삶이 곳곳에 배인 그 집, 포크레인에 소리 없이 사라졌을 그 집을 復權(복권)시키며 비석대신 자서전을 남겨 가족의 유산이 되었다.

 

아버님 자서전 ‘무명인의 발자취’ 13p 본문 발췌

어려운 살림 속에서 늘 허기졌던 나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소를 끌고 들판으로 나가 풀을 뜯기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소를 풀어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들판을 마구 달려 숨을 헐떡이다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왠지 모르게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돌멩이를 냇물에 던지며 물수제비를 몇 번 하고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그러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지면 눈부시게 파란 하늘 한가운데를 올려다보며 목청껏 소리쳤고, 배가 고프면 풀을 뜯어 입 안에 넣고 질근거렸다. 나라가 무엇인지, 독립이 무엇인지도 모를 예닐곱 살의 내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중국을 다녀오시면 얼마 안 있어 또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뒤 한 번 안돌아보시고 멀리 떠나시는 아버지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사랑보다는 언제 또 보려나 하는 막연한 걱정과 슬픔과 서운함이 앞섰다. 아버지는 독립 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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